고대 삼국인 고구려·백제·신라는 국가 통치와 도시 운영을 위해 각각 독자적인 도성 구조와 행정 중심지를 발전시켰다. 도성은 단순한 도시를 넘어 행정·군사·종교·경제 활동이 집약된 복합 공간이었다. 각 국가는 지리적 조건과 정치 전략에 따라 도성의 공간 배치를 달리했으며, 이는 해당 국가의 통치 철학과 권력 구조를 잘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삼국의 대표 수도였던 고구려 평양성, 백제 사비도성, 신라 경주의 도성 구조와 행정 기능을 비교 분석하고, 이들이 고대 도시로서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살펴본다.
1. 고구려 평양성의 도성 구조와 행정 기능
고구려는 5세기 장수왕 대에 평양으로 천도하며 대규모 도성을 조성했다. 평양성은 평야성과 산성, 내성, 외성으로 구성된 복합 도시였다. 도성 중앙에는 안학궁이 자리하고, 그 주변에 귀족 거주지, 관청, 창고, 종교 시설이 방사형으로 배치되었다. 행정 중심지는 왕궁과 연결된 관청군으로, 국정 회의가 이루어지는 정전, 내정과 외정을 분리한 공간 배치가 특징이다. 각 행정 부서들은 성 내부에 조직적으로 배치되었으며, 외성에는 상업지와 일반 민가가 밀집했다. 평양성은 군사적 방어와 행정 통치, 도시 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도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2. 백제 사비도성의 계획도시 구조
백제는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하며, 중국 남조의 도성 형식을 받아들여 정형화된 도시 계획을 시행했다. 사비도성은 사각형 형태의 성곽 안에 왕궁, 관청, 시장, 사찰 등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중심부에는 왕궁이 위치하고, 북쪽과 남쪽으로 주요 관청이 배치되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종교와 상업 기능이 집중되었다. 사비도성의 행정 중심지는 궁성과 인접한 정전 구역으로, 왕권과 행정력이 결합된 공간이었다. 백제는 관료제와 도성의 기능을 일치시키는 체계를 확립하여, 수도 전체를 계획된 통치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는 백제가 국제적 감각을 가진 문명국가였음을 시사한다.
3. 신라 경주의 도성 구조와 행정 구역
신라는 수도를 경주(서라벌)로 고정하고, 도시 내부를 왕경 6부로 나누어 행정 관할을 수행하였다. 왕궁인 월성은 도성 중심에 위치하며, 해자와 성곽으로 둘러싸여 정치의 핵심 공간으로 기능했다. 월성 주변에는 주요 사찰과 교육 기관, 관청들이 집중되어 있었고, 시민 거주지는 6부 체계를 따라 분산 배치되었다. 경주는 자연 지형을 따라 도시가 구성되었으며, 계획도시보다는 점진적인 발전을 거쳐 형성된 구조였다. 신라의 행정 중심지는 월성 내부와 황룡사 일대의 관청군으로, 불교 중심 통치 체계와 연결되어 작동하였다.
4. 도성 내 왕궁 배치의 차이점
삼국의 도성 구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왕궁의 위치와 성격이다. 고구려의 안학궁은 도시 중앙에 자리하며, 방대한 크기와 장엄한 외관으로 왕권의 상징 역할을 했다. 백제 사비의 왕궁은 도성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좌우 대칭의 계획적 배치가 특징이다. 신라 월성은 자연 지형에 따라 곡선 형태로 조성되어 비교적 소규모였지만, 상징성과 의례성이 강조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왕궁을 권력 집중 공간으로 설계한 반면, 신라는 행정과 종교 기능의 결합을 통해 왕궁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5. 관청의 분포와 행정 기능 구조
고구려는 평양성 내에 다양한 관청을 설치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였다. 국정 운영을 위한 대내관청, 군사 조직을 위한 병부, 외교 문서를 처리하는 사부 등이 기능별로 분화되어 있었다. 백제는 사비도성의 왕궁 주변에 중앙 관청을 집약시켜 행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사비의 중심 행정지구는 궁궐 정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관청이 좌우로 정렬되어 있었으며, 이는 중국 도성의 영향으로 보인다. 신라는 경주의 각 부에 해당 관청을 배치하고, 왕경 6부 체계를 통해 지방과의 연결을 도모하였다. 각국은 자신들의 정치적 특성에 맞게 행정 구역과 기능을 구조화하였다.
6. 종교와 행정 공간의 관계
삼국은 도성 내부에 종교 시설을 적극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통치 이념과 종교가 결합된 공간 구조를 형성하였다. 고구려는 평양성 내에 제단과 천문 관측 시설을 설치하고, 산천숭배와 도교적 요소를 반영한 신성 공간을 조성했다. 백제는 불교를 국교화하며 사비도성에 왕궁과 사찰이 인접하게 배치되었고, 사비의 대표 사찰인 정림사는 행정·종교 복합 공간의 역할을 했다. 신라는 불교 중심 국가로서 경주의 왕궁과 황룡사, 분황사, 불국사 등이 밀집되어 있었고, 이러한 공간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도성 내 종교 공간은 단지 신앙의 장소가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상징적 장치였다.
7. 시장, 교통망과 경제 중심지
고구려는 평양성 외곽에 시장을 배치하고 주요 도로를 통해 상업 활동을 촉진하였다. 관문과 창고가 도성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고, 교통망은 방사형 구조를 띠며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였다. 백제는 사비도성 내에 남시장과 동시장을 설치하고, 왕궁과의 거리 균형을 고려하여 경제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신라는 경주 중심에 시전을 설치하고, 6부의 중심 거리와 연결된 형태로 교통과 상업이 이루어졌다. 세 국가는 수도 내 경제 중심지를 왕궁과 분리하여 관리함으로써 정치와 상업의 균형을 이루고자 하였다.
결론
삼국의 도성 구조와 행정 중심지는 각국의 통치 철학, 도시 계획 능력, 정치 제도의 발전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는 자연지형을 활용한 복합 방어 도성, 백제는 정형화된 계획도시, 신라는 6부 중심의 실용적 도시 구조를 발전시켰다. 행정 중심지의 배치와 기능 구조는 각국의 국가 운영 전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오늘날 고대 도시 연구와 도시 행정사 이해에 있어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